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 정식 편입이 돌연 연기됐다. 애초 올해 11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편입이 내년 4월로 미뤄진 것인데 그 배경은 바로 일본의 ‘몽니’였다.
WGBI를 운용하는 영국의 FTSE 러셀(FTSE Russell)은 최근 한국 국채의 편입 일정을 기습 조정하며 “일부 글로벌 투자자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복수의 금융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이 요청의 실질적인 주체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한국 국채 편입에 따라 거래 시스템 정비와 내부 승인 절차에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펀드 자금의 40%를 좌우하는 일본인 만큼 WGBI가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을 거란 분석이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WGBI는 FTSE 러셀이 산출, 발표하는 글로벌 채권지수로, 26개 주요국의 국고채가 포함됐다. 이 지수는 블룸버그-바클레이즈 글로벌 종합지수(BBGA)와 JP모건 신흥국 국채지수(GBI-EM)와 함께 세계 3대 채권지수로 평가되며 이를 추종하는 자금 규모는 2조5000억~3조 달러에 달한다.
WGBI 편입은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하고 한국 금융시장에 안정적인 외국 자본 유입을 촉진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WGBI 편입은 국채 금리를 평균 0.2~0.6% 낮추는 효과가 있다. 오늘(23일) 기준 대한민국 국채 금리는 10년 만기 2.60% 수준이다.
한국의 국채 지수 비중은 2%대 초반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 연기로 인해 올해 한국 국채 시장에 예상됐던 최대 90조원 규모의 해외 자금 유입 효과도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정부는 정치적 불확실성과의 연관성을 일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정국 불안에 따른 WGBI 편입 지연’이라는 분석에 “국내 정치 상황 때문이었다면 편입 완료 시점 자체가 미뤄졌을 것”이라며 “이번 조정은 단순히 투자자의 기술적 준비 문제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일본 측의 의도적 견제 가능성을 제기한다. 한 채권운용 전문가는 “한국의 국채시장 신뢰도가 높아지면 일본 투자자들의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례는 WGBI 편입 결정 이후 편입 시작이 연기된 첫 번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본을 강하게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경제평론가는 방송에서 “이미 많은 국가가 한국 국채를 매입할 계획을 세웠고 자금 세팅까지 돌입한 상황이었다”며 “일반적으로 지수 편입 전 선제적 매매 자금이 같이 움직이기 마련인데 일본 측 방해로 모든 게 틀어졌다”고 우려했다.
그는 “일본이 ‘국채 매입에 테스트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황당한 이유를 댔지만, 이는 말이 되질 않는다. 한국 국채는 원래 유통되던 상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올해 200조원 이상의 국채가 발행될 예정이었고 국채 지수를 쫓아가는 자금들이 한국 국채를 사들이는 방향으로 정밀한 설계가 됐었는데 이 자금 유입이 연기되며 수급 저하와 이에 따른 금리 상승 우려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그동안 수도 없이 ‘굳건한 한일 관계’를 언급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에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며 “이에 따른 부담은 오롯이 한국 국민이 떠안게 됐다. 정부의 무능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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