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배력은 커졌고, 책임은 사라졌다”
최근 하와이 호놀룰루의 고급 콘도 단지 ‘스카이 알라모아나’에 대한 소식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겉보기엔 성공적인 해외 부동산 개발이지만, 그 뒤에는 한국 IT 기업 NHN의 창업주 이준호 회장의 복잡한 사익 구조가 숨어 있다.
하와이에서 벌어진 수천억원 규모의 개발 사업은 단순한 해외 투자 이상이었다. 그것은 NHN 주주들의 이익이 개인 자산으로 전환된, 매우 구조화된 시스템의 결과였다.
■ 하와이 부동산은 누구의 것인가
JL캐피탈은 하와이 현지에 본사를 둔 부동산 개발회사다. 2016년 ‘JL Ala Moana LLC’로 등록된 이 회사는 이후 ‘JL Capital’로 사명을 바꾸고 호놀룰루 시내 알라모아나·카피올라니 대로 일대를 중심으로 대형 고층 복합단지 개발에 나섰다.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는 43층, 40층짜리 쌍둥이 빌딩 ‘Sky Ala Moana’다. 이 곳은 메리어트 호텔 브랜드 르네상스가 입점하고 390세대의 고급 콘도가 함께 지어진 복합개발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 화려한 건물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JL캐피탈은 NHN 이준호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 법인이다. 그리고 그 사업자금은 한국에서 반복적으로 유출된 NHN 주식 거래를 통해 조달됐다. 구체적으로 이 회장은 2024년과 2025년 각각 227억 원과 684억 원에 달하는 NHN 주식을 자신이 소유한 JLC, JLC파트너스를 통해 블록딜 방식으로 매입했다. 이 자금이 JL캐피탈로 흘러들어가 하와이 개발 자금으로 전환된 것이다.
■ ‘개발’이라는 이름의 로비
JL캐피탈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 회사가 아니다. 2020년 호놀룰루 시장 선거를 앞두고 이 회사의 대표 티모시 리(Timothy Lee)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본인의 기부한도를 초과한 뒤 직원 네 명 명의로 총 1만3000달러를 기부했고 이들에게 현금과 수표로 해당 금액을 변제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하와이 주 선거자금 지출 위원회는 이를 중범죄로 간주하고 티모시 리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 내부고발로 촉발된 이 사건은 단순한 불법 기부가 아니라 JL캐피탈이 호놀룰루 시정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다는 정황으로 이어졌다. 도시 인허가 과정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보험’이었다는 평가다.
■ HPSP 투자, 기업 이익의 유출
JL캐피탈의 실체를 둘러싼 의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NHN과 그 자회사들은 한 벤처기업의 고속성장을 누구보다 먼저 지켜봤다. 반도체 증착 장비 제조사인 HPSP는 NHN의 파트너사로, 내부 정보가 충분히 공유된 기업이었다. 그러나 NHN은 HPSP에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그 기회를 가져간 것은 이준호 회장의 또 다른 개인회사인 JLC파트너스였다.
JLC파트너스는 불과 70억원의 초기 투자로 HPSP 관련 펀드의 최대 출자자가 되었고 현재 5477억 원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거머쥐었다. 이 과정에서 투자 집행을 주도한 인물은 당시 NHN인베스트먼트 대표이자 이사회 임원이었던 강진규 씨였다. 그는 동시에 JLC파트너스의 대표도 겸직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이해충돌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가 가져야 할 수익 기회를 판단 권한을 가진 내부자가 대주주의 개인회사로 넘긴 구조적 배임일 가능성이 크다. NHN이 자발적으로 투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투자기회가 조직적으로 '외부 유출'된 것이다.
■ 주가 하락 뒤에 감춰진 지배력 강화
이준호 회장은 2013년 3.74%에 불과하던 NHN의 지분을 2025년 기준 22.39%까지 늘렸다. 여기에 개인 회사인 JLC, JL파트너스를 통한 간접 지분까지 포함하면 55.2%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유상증자, 물적분할, 자사주 매입 등을 활용해 꾸준히 주가를 낮춘 후 저가에 주식을 매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NHN페이코, NHN클라우드 등 핵심 사업부의 물적분할이다. 소액주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분할을 강행한 후 관련 자회사 상장을 통해 자금조달을 시도하는 구조는 반복됐다. 하지만 상장 이후 구주 현물배당 등의 보상책은 한 번도 이행되지 않았다.
이처럼 오너 일가는 지배력을 강화하고 투자 실패의 부담은 고스란히 소액주주에게 전가됐다. “경영 실패 시 물러나겠다”던 경영진은 실적 부진에도 연임을 반복하고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 제도적 침묵과 무너진 시장의 신뢰
이 모든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국민연금은 아무런 견제도 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NHN의 주요 주주임에도 불구하고 오너의 사익 추구를 방조하는 모양새다. 감독기관의 미온적인 태도는 사실상 구조적 배임을 용인하는 것이며,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 자본시장은 이제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 오너의 ‘투자’와 ‘탈출’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 지배력과 경영 실패 사이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 공정한 자본시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존재하는가?
이를 종합하면 JL캐피탈은 단지 ‘사건’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JL캐피탈 문제는 하나의 회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낸 거울이다.
오너의 이름으로 감춰진 자산 이동, 정치자금법 위반, 그리고 주주 이익의 배제는 단지 기업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법치와 공정성, 책임과 자본의 균형이라는 더 큰 질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사회가 이 사건을 어떻게 마주하고 대처할지에 따라,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이나 침묵이 아니다. 강력한 조사, 제도적 개혁, 그리고 자본시장 구성원들의 집단적 의지"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예결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