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정·재계에 심각한 갈등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싶은 대기업, 그들과 상부상조해 온 ‘자칭’ 보수당이 벌이는 저항 탓이다. 여기에 더해 '덜 배운' 기자들과 '의도'를 가진 언론사들이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정식 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다.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시민들이 노란색 봉투에 성금을 모아 전달한 사건에서 이름을 따왔다. 당시 수천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에 시달리던 해고자·파업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시민 연대의 상징이었다.
이 법안은 세 가지를 핵심으로 한다.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하청·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 보장 ▲쟁의행위 범위 확대(임금뿐 아니라 구조조정·작업환경 등 생존권 문제까지 포함) 등이다. 즉, ‘불법 파업 조장법’이 아니라 한국 노동법의 공백을 메우는 보완 입법이다.
재계는 “노란봉투법이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왜곡이다. 바뀐 법 어디에도 ‘불법’을 보호하라고 하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회사의 불법적 행위에 대한 ‘정당방위적’ 파업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쌍용차 파업 당시 회사가 제기한 손배 청구액은 470억원. 노동자 80여명이 빚더미에 앉았다. 더 나아가 민주노총 추산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20년까지 제기된 손배·가압류 소송 규모는 누적 1600억원에 달한다.
회사가 실제로 받아 간 금액은 미미하지만, 문제는 ‘위협 효과(Chilling Effect)’다. 소송이 제기되는 순간 노동자 개인의 급여·집·자동차까지 가압류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상황은 특이하다. OECD 국가 중 기업이 노동자에게 거액 손배를 청구하는 관행은 극히 드물다. 유럽 대부분 국가는 노사 분쟁으로 인한 영업손실을 ‘경영상 위험’으로 간주한다.
비판론자들은 “노란봉투법이 파업을 부추겨 기업 활동이 마비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데이터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OECD 통계(2010~2020년)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파업 손실일수는 노동자 1000명당 약 38일이다. 이는 같은 기간 프랑스(118일), 캐나다(90일), 덴마크(65일)보다 훨씬 적다. 노조 조직률 역시 한국은 14% 내외(2023년 기준)로 OECD 평균 27%의 절반 수준이다.
즉, 한국은 ‘파업 천국’이 아니라 오히려 ‘파업 억제 사회’다. 오히려 손배소 위협이 노동자의 합법적 쟁의권을 과도하게 봉쇄해 왔다는 게 팩트다.
다시 쌍용차 사례를 보자. 쌍용차 구조조정에 반발한 77일 파업은 대규모 경찰 투입과 충돌로 이어졌다. 사측의 손배소에 수십 명이 가압류로 집과 재산을 잃었다. 특히 다수 노동자가 생활고와 우울증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손배소의 사회적 비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대차 사내하청 사건도 있다. 현대차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이 사실상 근로조건을 통제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교섭권조차 없었다. 결국 수년간 불법파견 소송을 벌여 대법원판결로서야 일부 권리가 인정됐다. 이 사례는 노란봉투법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실질적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는 최소한의 장치가 없으면 하청 노동자는 사실상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격렬한 공방은 단순히 법조문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재계는 경영권 침해를 이유로 강하게 반발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손배소’라는 무기를 내려놓기 싫은 것이다. 보수 정부는 ‘노사 균형’을 명분으로 들지만, 실상은 기업 부담 완화를 우선시한다. 특히 윤 정권은 노조 회계 투명성, 불법 파업 엄단 등을 강조하며 노동계와 극심한 대립각을 세웠다.
■ 국제 규범과 한국의 과제
ILO 협약 87호·98호(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는 이미 한국이 비준한 국제 규범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ILO는 매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손배·가압류 제도를 ‘노동기본권 침해’라고 지적한다.
노란봉투법은 국제 기준에서 보면 결코 과격한 법이 아닌, 오히려 한국을 ‘정상화’하는 수준의 보완 입법에 가깝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불법 파업 조장’ ‘기업 활동 위축’이라는 주장은 통계와 사례 앞에서 설 자리가 없다. 이 법은 노동자의 무책임한 행동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법과 제도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사회적 대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장치다.
실질적 사용자가 책임을 지고 노동자는 과도한 손배 공포에서 벗어나 합법적 테이블 위에서 협상할 수 있다면 노사 모두가 ‘정상적 갈등 관리’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특혜가 아니라 균형이다. 진짜 위기는 법안이 아니라 여전히 반복되는 오해와 왜곡의 선동이다. 그리고 그 같은 현상이 방치된다면 사회적 비용은 다시 노동자·시민·국가 전체가 떠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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