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2030년까지 폭발적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5일 블룸버그NEF(BNEF)와 IEA 등에 따르면 2030년 전 세계 신규 설치 규모는 137GW(442GWh)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연평균 21% 성장률에 해당하며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중국의 의무화 정책이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누적 설치 용량이 1028GWh에 이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2620억 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탈탄소 전환 경로를 전제로 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NZE(Net Zero Emissions) 시나리오에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200GW의 배터리 저장이 필요하다고 평가됐다.
이는 전체 저장 설비 1500GW 중 90%를 배터리가 차지하는 수준으로, 그리드 확충과 정책 추진이 병행될 경우 수요는 훨씬 더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시장의 성장 속도는 더욱 가파르다. 작년 초 17GW에 불과했던 미국 내 배터리 저장 용량은 2030년까지 80GW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프로젝트 가속화와 주정부 차원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겹치면서 시장의 파이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정책 지원 동력도 뚜렷하다. 미국은 30% 투자세액공제(ITC)를 독립형 배터리에도 적용,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리튬이온 비(非)EV용 배터리에 25% 고율 관세를 내년부터 부과하기로 하면서 공급망 현지화와 동맹국 중심 조달을 유도하고 있다. EV용 배터리에는 이미 작년부터 25% 관세가 적용 중이다.
■ SK온, 첫 수주로 포문 열다
SK온은 4일 미국 플랫아이언(Flatiron)과 7.2GWh 규모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공급하는 이 계약은 SK온이 전기차 중심 사업을 넘어 ESS 전용 배터리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현재 시장의 강자는 중국 CATL을 필두로 한 대규모 배터리 업체들이다. 저가·대량 공급 능력으로 글로벌 점유율을 장악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규제 장벽으로 서방 시장에서 입지는 제약받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기업들은 현지 생산 체제와 안전성·신뢰성을 무기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LFP 생산 라인을 준비 중이고, 삼성SDI는 ESS 전용 신제품을 앞세워 시장을 노린다. SK온 역시 LFP 기반 ESS로 미주 시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 기술 경쟁력, LFP가 사실상 표준
ESS 배터리 화학계는 이미 리튬인산철(LFP)로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정지형 저장에서 LFP가 주력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LFP는 사이클 수명 4000회 이상으로 니켈·코발트 기반(NMC) 배터리보다 두 배 가까이 오래 간다. 안전성과 원가 경쟁력에서도 우위에 있어 ESS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다만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2030년 약 10% 점유율을 차지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철-공기 배터리와 같은 장주기 저장 기술도 100시간 단위 실증이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기술 다변화가 불가피한 이유다.
블룸버그는 “2030년 미국 ESS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현지화와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확보할 수 있는 점유율은 20~30%, 최대 35%로 확대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이는 64~112GWh 공급량에 해당하는 수치로, 전력·배터리 산업 전반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4일 HD현대일렉트릭도 약 1400억원 규모의 미국 텍사스 200MWh급 '루틸 BESS BESS(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 프로젝트를 따냈다. 변압기·차단기 등 전통 전력기기 강점을 EPC(설계·조달·시공)로 확장한 사례다.
업계 한 전문가는 “SK온과 HD현대일렉트릭의 연이은 수주는 단순한 성과를 넘어 한국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중심의 성장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폭발적으로 성장할 ESS 시장에서 안전성, 현지화, 기술 다변화를 무기로 삼는다면 한국은 중국 중심의 글로벌 배터리 질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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