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회 "내년 본예산 심사서 상습 이월 부서 '필벌'" 강력 경고
[예결신문=김지수 기자] '세계 반도체 수도'를 표방하며 인구 60만을 돌파한 평택시가 심각한 재정 운용 난맥상을 드러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가동 등으로 역대급 세수를 확보하며 외형은 광역시급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시민 삶의 질과 직결된 예산은 제때 집행하지 못하고 곳간에 쌓아두는 '동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11일 예결신문이 입수한 시의 '2024 회계연도 결산서'를 분석한 결과, 시는 시민의 생명권인 '환경' 예산과 도시 품격을 좌우하는 '문화' 예산을 대거 사장(死藏)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 돈은 넘치는데⸱⸱⸱3185억 묵혔다, 전체 예산의 14%
본지 분석 결과, 시가 작년 한 해 예산을 편성해 놓고도 집행하지 못한 미집행 예산은 총 318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의 전체 예산 규모가 약 2조3000억원(본예산 기준)임을 감안하면, 전체 살림살이의 14%에 육박하는 돈이 제대로 쓰이지 못한 셈이다. 이는 경기도 내 타 지자체와 비교해도 재정 효율성의 심각한 구멍이다.
세부 내역을 뜯어보면 행정의 난맥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토지 보상 지연이나 공정률 저조로 어쩔 수 없이 내년으로 넘긴 이월액이 235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사업 자체를 포기하거나 과다 편성으로 인해 아예 쓰지 못하고 소멸된 불용액도 835억원에 육박했다.
이는 시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세워 800억원이 넘는 돈을 묶어뒀거나(불용), 행정 처리가 늦어져 2300억원을 제때 투입하지 못했다(이월)는 증거다. 시 예산과 관계자는 "고덕국제신도시 등 대규모 개발 사업에 행정력이 집중되다 보니 집행이 늦어진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매년 반복되는 변명에 불과하다.
■ 미세먼지 최악인데⸱⸱⸱환경 예산 '전액 불용' 수두룩
3185억원 중 가장 뼈아픈 대목은 '환경' 분야다. 시는 평택항과 대규모 공사장, 고속도로가 얽혀 있어 전국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 농도를 나타낸다. 하지만 관련 예산 집행은 하세월이다.
취재 결과, 국·도비 매칭 사업인 '소규모 사업장 방지시설 설치 지원 사업'과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지원' 등은 홍보 부족과 행정 절차의 번거로움 탓에 예산을 다 쓰지 못하고 반납하거나 불용 처리했다. 특히 야심 차게 편성했던 '미세먼지 차단 숲 조성 사업'은 일부 구간의 부지 확보 실패를 이유로 삽도 뜨지 못한 채 예산 전액이 이월됐다.
미세먼지를 막아줄 숲을 조성할 돈 약 1100억원(환경·녹지 분야 추산)이 낮잠을 자는 동안 시민들은 잿빛 하늘 아래 방치됐다.
■ 평화예술의전당·구도심 정비⸱⸱⸱멈춰 선 도시
고덕 신도시의 랜드마크로 기대를 모았던 '평화예술의전당(현 평택아트센터, 내년 3월 개관)' 건립 사업도 예산 적체의 주범이었다. 당초 계획보다 공정이 턱없이 늦어지면서 작년에 집행했어야 할 기성금 수백억원이 고스란히 이월됐다. 입찰 과정의 잡음, 자재비 상승에 따른 설계 변경, 시공사와의 이견 등이 겹친 총체적 난국이다.
구도심 역시 철저히 소외됐다. '평택역 주변 정비(성매매 집결지 폐쇄 및 재생) 사업'은 보상 협의 난항으로 계속 늦춰졌고 송탄 지역의 '신장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당초 2023년까지 추진 예정이었으나 주민 갈등 조정 실패로 지금도 지지부진하다. 신도시 개발에 행정력이 쏠리면서 정작 손길이 시급한 구도심 정비 예산은 뒷전으로 밀려난 셈이다.
■ 남는 예산에도 2천만원짜리 '스마트 횡단보도'는 거절
더 큰 문제는 수천억 원을 남기면서 정작 주민들의 절박한 소액 민원은 "돈이 없다"며 묵살했다는 점이다.
본지 확인 결과, 지난해 주민참여예산 제안 사업 중 ▲초등학교 앞 스마트 횡단보도 설치(약 2000만원) ▲마을 경로당 안마의자 교체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 CCTV 설치 등 생활 밀착형 사업 다수가 "예산 부족 및 시급성 부족"을 이유로 미반영됐다. 아이들의 등굣길 안전을 위한 2000만원은 아까워하면서 800억원이 넘는 돈을 불용 처리해 날려버리는 '거꾸로 행정'의 전형이란 지적이다.
이에 평택시의회도 폭발했다. 지난 행정사무감사와 결산 심사에서 시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집행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성토했다.
김산수 의원(기획행정위)은 "평택시가 '세수가 줄어 재정이 어렵다'며 올해 수백억 원의 지방채까지 발행해 놓고 막상 결산을 까보니 3000억원이 넘는 돈을 안 쓰고 남겼다"며 "빚을 내서 통장에 넣어두는 이런 바보 같은 살림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맹비난했다. 시 집행부의 재정 예측 실패가 심각한 수준임을 꼬집은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의 지연에 대해서는 김혜영 의원이 직격탄을 날렸다. 김 의원은 "당초 2021년이면 윤곽이 나온다던 평화예술의전당이 2024년이 지나도록 공정률이 바닥을 기고 있다"며 "매년 예산만 잡아놓고 이월시키는 '희망 고문'을 멈춰야 한다. 자재비 상승 핑계만 대지 말고, 안 될 것 같으면 과감하게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질타했다.
■ "사실상의 직무유기⸱⸱⸱구조적 수술 필요"
전문가들은 평택의 높은 미집행률을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닌, 시스템의 붕괴로 진단했다.
한경대학교 공공정책학과 김지원 교수는 "예산 불용과 이월이 전체 예산의 14%에 달한다는 것은 기업으로 치면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을 썩히는 배임 행위와 같다"며 "고물가 시대에 예산을 제때 집행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막대한 기회비용을 날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평택시의회 예결특위는 "이번 결산 승인 과정(6월)에서 드러난 상습 이월 부서와 집행 부진 사업에 대해서는 2026년도 본예산 심의 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페널티'를 적용하겠다"며 "시장이 직접 주재하는 '신속집행 비상대책회의'를 정례화하지 않는다면 의회 차원의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출처
• 2024회계연도 평택시 세입·세출 결산서
• 평택시의회 정례회 회의록(행정사무감사 및 결산검사)
• 2024년도 주요업무 추진실적 및 예산성과보고서
• 2024년도 주민참여예산 제안사업 심의 결과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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