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결신문=신세린 기자] 전국 건설 현장의 착공이 멈춰 서고 있다. 올해 들어 주택 착공이 급감하고 미분양 물량이 폭증하면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금융권과 지방재정으로 번질 조짐이다. 전문가들은 “착공 절벽과 미분양 누적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경기순환이 아니라 구조적 경착륙의 신호”라고 진단한다.
■ 착공 급감···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
10일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전국 주택 착공은 1만6304호로, 전년 동월(2만9235호)보다 44.2% 감소했다. 수도권 착공은 9012호로 57.8% 줄었고, 지방은 7292호로 7.1% 감소했다. 인허가도 1만7176호로 전년 대비 39.9% 줄었으며 준공 물량은 2만8호로 52.8% 급감했다.
1~8월 누적 기준으로도 상황은 심각하다. 전국 주택 착공은 14만851호로 전년 동기 17만4175호보다 19.1% 감소했다. 수도권은 8만5351호(-15.4%), 비수도권은 5만5500호(-24.3%)로 집계됐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이 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며 “착공 절벽은 1~2년 뒤 완공 물량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미분양 6만6000호···‘악성 재고’ 급증
공급 감소에도 수요 위축은 더 가팔라졌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6613호로 전월 대비 7.0%(4369호) 증가했다. 준공 후 미분양은 2만7584호로 두 달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지역별로는 대구(3702호)·경남(3314호)·경북(3237호)·부산(2772호) 순으로 미분양이 많았으며 전체의 83.9%가 지방권에 집중됐다. 수도권 미분양도 1만4631호로 전월 대비 10.1% 늘었다.
특히 준공 후 미분양은 사업이 이미 끝난 상태에서 팔리지 않은 ‘악성 재고’로 분류된다. PF 대출을 끌어다 쓴 시행사 입장에서는 자금 회전이 막히고 건설사엔 이자 비용 부담이 남는다. 한 중견 건설사 재무담당자는 “지금은 분양률보다 미분양 속도가 더 중요하다”며 “준공 후 재고가 늘면 현금흐름이 끊긴다”고 말했다.

■ PF 부실, 금융권으로 번지는 도미노
PF 부실 위험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0.37%였던 PF 연체율은 올 상반기 4.49%로 급등했다. 부실 규모는 약 2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금리·자재비 상승에 더해 금융기관이 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신규 PF 공급이 막히고 있다. 특히 책임준공·보증형 PF 비중이 높은 중소건설사들은 자금 압박이 직접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은 PF 신규 승인 자체를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며 “상환 기간이 짧은 차환용 PF는 사실상 막혀 있다”고 말했다.
이 여파로 철강·시멘트·건자재 등 후방 산업 수요도 줄었다. 건설업종 근로자 수는 4년 새 19만명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하도급·노무·운송업계까지 연쇄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 지방공기업·도시공사 ‘출자 리스크’ 확대
문제는 지방이다. 미분양의 80% 이상이 지방권에 몰리면서 지방 도시공사·주택공사의 보증·출자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지방공기업은 택지개발·도시재생 사업에 공동 시행사로 참여하면서 분양 수익에 의존하지만, 분양이 지연되면 이자 비용이 재무제표에 누적된다. 이는 곧 지방채무 증가로 이어진다.
일부 지자체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LH가 매입하거나 임대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임시방편일 뿐, 구조적 해소책이 아니다”고 지적한다. 홍성민 한국건설경제연구소장은 “착공 급감과 미분양 누적은 단순한 경기 조정이 아니라 지방재정과 금융시스템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는 복합위기”라며 “특히 지방도시공사의 보증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결산 시 부채가 폭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주문하는 건 네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로 정부가 PF 리스크를 선별 관리해야 한다. 책임준공·보증형 PF의 위험 가중치를 조정하고 사업별 리스크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로 미분양 지역에 한시적 세제 감면과 분양가 현실화를 추진하고 청년층·신혼부부 대상 실수요 촉진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건설사들은 주택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SOC·플랜트·에너지 인프라 등 비주택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야 한다.
넷째, 지방공기업은 지방채 발행 한도 내에서 보증·출자 비율을 관리하고 중앙정부는 PF 유동성 완충 펀드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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