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대 중 39대가 '사고 기종'⸱⸱⸱노후화 심각하지만 교체 여력 없어
부채비율 391%·유동비율 44%⸱⸱⸱AK홀딩스 주식 담보 대출 '마진콜' 공포
[예결신문=신세린 기자] 어제(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이른바 '무안 참사’의 충격이 확산하는 가운데 사고 기종인 '보잉 737-800'에 대한 구조적 결함 의혹이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같은날 노르웨이에서도 동일 기종이 유압 장치 고장으로 불시착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번 참사가 단순한 불운이 아닌 '예견된 재앙'이었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탑승객 179명이 전원 사망하고 승무원 2명만이 생존한 이번 참사는 국내 항공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문제는 사고 수습을 책임져야 할 제주항공과 모기업 AK홀딩스가 이미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는 점이다. '죽음의 기종'이라 불리기 시작한 B737-800에 대한 공포와 그룹 전반의 재무 리스크가 맞물리며 AK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 "같은 날, 같은 기종, 다른 운명"…전 세계가 경악한 B737-800
30일 항공업계와 인도 일간지 '텔랑가나 투데이' 등 외신에 따르면,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29일(현지시각) 노르웨이에서도 동일한 보잉 737-800 여객기가 사고를 일으켰다. 오슬로를 출발해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던 KL1204기는 이륙 직후 5000피트 상공에서 유압 시스템 고장을 일으켜 회항했고 착륙 과정에서 활주로를 이탈해 풀밭으로 미끄러졌다.
다행히 노르웨이 사고에서는 탑승객 182명 전원이 무사히 구조됐지만, 한국의 무안 공항에 접근하던 제주항공 여객기는 처참하게 파괴되며 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하루 새 지구 반대편 두 곳에서 벌어진 동일 기종의 사고는 B737-800의 안전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외신들은 "두 사고 모두 B737-800 기종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결코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며 "보잉사는 설계 결함 가능성을 열어두고 즉각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실 B737-800의 안전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3월 중국 동방항공 소속 여객기가 수직으로 추락해 131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올해 들어서도 미국 알래스카항공 여객기의 기내 연기 발생 회항, 사우스웨스트항공 여객기의 엔진 커버 이탈, 코렌돈항공의 타이어 폭발 사고 등 해당 기종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1997년 출시 이후 전 세계적으로 5000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이제는 승객의 목숨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된 셈이다.
■ 제주항공의 치명적 약점, '올인' 전략이 독 됐다
문제는 제주항공이 전 세계 항공사 중에서도 유독 B737-800 기종 의존도가 기형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항공기 등록 현황에 따르면, 현재 제주항공이 보유한 항공기 41대 중 무려 39대(95%)가 B737-800이다. 티웨이항공(25대), 진에어(19대), 이스타항공(6대), 대한항공(2대) 등 타 항공사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체의 노후화다. 제주항공이 보유한 B737-800 대부분은 제작된 지 14년이 넘었으며, 국토부가 노후 항공기로 분류해 집중 관리를 시작하는 기준인 기령 20년에 육박한 기체들도 상당수다. 단일 기종으로 정비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제주항공의 '기단 단일화' 전략이 기체 결함 이슈가 터지자마자 회사의 숨통을 조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제주항공은 거른다'는 보이콧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며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대대적인 기종 교체가 필수적이지만, 현재 제주항공의 재무 상태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 빚더미 앉은 제주항공, 사고 수습할 돈이 없다
이번 참사가 제주항공에 치명타가 되는 이유는 열악한 재무구조 때문이다. 제주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기초 체력이 바닥난 상태다. 지난해 1698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이는 빚을 갚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제주항공의 부채비율은 391%에 달한다. 기업의 단기 지급능력을 보여주는 유동비율은 44%에 불과하다.
실제로 제주항공이 1년 내 상환해야 하는 단기차입금, 리스 부채, 미지급금 등 단기부채 총액은 5647억원에 달하지만,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은 2155억원에 그친다. 유가족 피해보상금과 사고 수습 비용, 운항 정지에 따른 손실까지 겹칠 경우 제주항공은 자력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질 공산이 크다.
■ 모기업 AK홀딩스로 번지는 불길…'담보 리스크' 폭발
제주항공의 위기는 모기업인 AK홀딩스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 애경그룹의 지주사인 AK홀딩스는 제주항공 지분 50.3%를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그룹의 캐시카우이자 '소년 가장'으로 여기며 전사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한 복잡한 자금 거래가 이제는 그룹 전체를 옥죄는 족쇄가 됐다.
AK홀딩스는 재무구조 악화 속에서도 계열사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주항공 주식을 담보로 거액을 빌렸다. 2022년 제주항공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13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고, 이와 별도로 7건의 주식 담보 대출을 통해 1640억원을 조달했다. 오너 일가인 장영신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애경자산관리 역시 제주항공 주식을 담보로 210억원을 대출받은 상태다.
문제는 이번 참사로 제주항공의 주가가 폭락할 경우, 담보 가치 하락에 따른 금융권의 상환 압박(마진콜)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채권단은 대출금을 즉시 회수하거나 담보로 잡은 주식을 강제로 처분하게 된다. 이는 AK홀딩스의 유동성 위기는 물론, 그룹 경영권 상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 가습기 살균제의 악몽, 그리고 무안 참사…신뢰 잃은 애경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사고가 아닌, AK그룹의 총체적 관리 부실이 빚어낸 참사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과거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이미 도덕성과 신뢰에 치명상을 입었던 애경그룹이 이번에는 항공 안전 소홀로 대형 인명 사고를 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증권가에서는 벌써 '손절' 움직임이 감지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유가족 배상금 규모가 천문학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며 "기체 결함 이슈로 인한 탑승률 급감과 노후 항공기 교체 비용 압박까지 고려하면 AK그룹이 독자적으로 이 파고를 넘기는 힘들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제주항공과 AK홀딩스 앞에 놓인 것은 179명의 희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과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뿐이다. '안전'보다 '효율'을 택했던 대가가 기업의 존망을 흔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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