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2026년 정부 지출 구조조정 내역이 사상 처음으로 전면 공개됐다. 지난 3년간 정부는 매번 수십조원 안팎의 구조조정을 했다고 밝혀왔지만, 구체적 명단은 공개한 적이 없다. 이번 공개는 불투명했던 재정 운영의 실체를 드러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분석 결과 부처별 편차는 극심했고 구조조정의 실효성에도 논란의 여지가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나라살림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가장 많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부처는 국토교통부(6.7조원)였다. 전체 구조조정액(23.2조원)의 29%를 차지한다. 핵심은 ‘주택구입·전세자금 융자(-3.8조원)’와 ‘분양주택 융자(-1조원)’ 삭감이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급증했던 주택 관련 금융 지원을 조정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주택 공급 확대 대신 수요 금융 지원이 지나치게 부풀려지며 전세대출 부작용이 심화한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융자 중심의 주택정책에서 벗어나 임대주택 등 공공성 강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중 금융위원회는 지출의 무려 70%를 삭감해 비율 기준 1위를 차지했다. 전체 예산 1.68조원 중 1.18조원을 감축했다.
주요 삭감 항목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캠코 출자, -5000억원) ▲반도체 설비투자 지원 특별프로그램(산업은행 출자, -2500억원) 등이다. 대부분 사업 종료나 일회성 성격의 사업으로 실질적인 구조조정 효과보다는 ‘일몰 사업 반영’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는 전체 예산 4.27조 원 중 0.67조원(15.6%)을 감축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ODA 사업이 크게 축소된 결과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역시 18.4%를 줄였지만 절대 금액은 1200억원 수준에 그쳤다.
■ 행안부, 지출 구조조정 ‘최하위’···투명 재정 시험대
문제는 행정안전부다. 사실상 ‘손 놓은 구조조정’이란 분석이다. 총지출 72조원 중 구조조정은 고작 1374억원으로 0.2%에 불과하다.
행안부 예산은 지방교부세 등 법정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구조조정 여력이 제한적이라는 방어 논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복지부 역시 법정 지출이 많은 부처임에도 0.4%(4400억원) 수준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을 고려하면, 행안부의 성적표는 지나치게 낮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의무 지출 비중을 고려해도, 0.2%라는 수치는 구조조정 의지 부족의 방증”이라며 “법정 지출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구조조정을 사실상 면제받는 것은 재정혁신 취지와 배치된다”고 꼬집는다.
행정안전부의 ‘최하위’ 성적은 단순히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니다.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정부 기조 속에서 누가 실제로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혁신을 이끌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시금석이다.
■ 남은 과제와 전망
여전히 남은 의문은 ‘지출 구조조정’의 정의다. ▲사업 종료 ▲집행 부진 ▲단순 명칭 변경도 구조조정으로 포함되면서 정책적 선택에 따른 효율화와 단순 회계 처리의 구분이 모호하다.
따라서 “정부가 말하는 구조조정은 진짜 재정개혁인가, 아니면 숫자 맞추기인가?”라는 의문이 남는 게 사실이다. 특히 행안부와 같은 최하위 부처는 국회와 시민사회 검증 대상이 될 전망이다.
연구소 측은 “재정 건전성 실효성 확보면에서도 일몰 사업 반영이 아닌 진정한 지출 효율화로 이어져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지출 구조조정’이 진짜 혁신으로 작동하려면, 형식적 삭감이 아닌 실질적 정책 우선순위 조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공개는 숫자로 포장된 홍보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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