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핵심 원인인 지배구조 모순 해결 서막⸱⸱⸱1400만 개미 투자자 법적 보루 마련
거부권 정국 속 이복현 금감원장 '배수진' 통해⸱⸱⸱경영권 방어 아닌 '주주 권리'가 시대정신
[예결신문=김용대 위원]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지탱해온 상법이 70년 만에 '주주의 품'으로 돌아왔다. 1953년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마침내 일반 주주 전체로 확장된 것이다.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단순히 법 조항의 수정을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동안 '회사'에 국한됐던 이사의 책임 범위를 핑계 삼아 소액주주를 희생시켜 대주주의 이익을 챙겨왔던 관행은 이제 명백한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됐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인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회사뿐만 아니라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언뜻 보기엔 지극히 당연한 이 원칙이 그동안 한국 증시에서는 '금기'와도 같았다.
기존 법령 아래에서 이사들은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합병이나 물적 분할을 결정하더라도 "회사의 자산에는 변동이 없으므로 배임이나 충실의무 위반이 아니다"는 논리로 법망을 피해왔다. 이로 인해 한국 주식시장은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게 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이제 이사들은 모든 경영 판단의 순간마다 '이 결정이 대주주뿐만 아니라 소액주주들에게도 공정한가'를 증명해야 하는 책무를 짊어지게 됐다.
법안 통과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재계의 거센 반발과 여당 내 신중론으로 인해 지난달 본회의 상정이 무산되는 등 폐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반전의 열쇠는 정부 내부에서 나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직을 걸고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며 주주 권리 강화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 원장은 자본시장 선진화와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선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이는 그동안 '경영 위축'을 이유로 반대해온 경제 부처와 대통령실의 기류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으며 결국 야권 주도 속에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법안 통과가 한국 증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그동안 한국의 이사회는 지배주주의 의사를 집행하는 기구에 불과했다"며 "주주 충실의무 도입은 이사회가 실질적인 독립성을 갖추고 모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고려하게 만드는 강력한 법적 유인책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외면했던 가장 큰 이유인 거버넌스 리스크가 해소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우리 증시의 저평가 구조가 해소되는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계는 "이사의 의무 확대가 소송 남발로 이어져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로막을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배임죄'와 결합 가능성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은 "재계가 우려하는 소송 리스크는 이사회가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쳤음을 증명한다면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해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노 위원은 오히려 "이번 개정이 기업 경영진으로 하여금 주주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는 '상생의 경영'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적인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시선은 법안 공포 이후의 변화로 쏠린다. 집중투표제의 도입, 사외이사의 '독립이사' 명칭 변경,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 패키지로 통과된 지배구조 개선책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가 관건이다.
70년 만에 주주의 품으로 돌아온 이사의 의무가 한국 증시를 '투기장'에서 '투자처'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 1400만 투자자의 눈과 귀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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