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에쓰오일, 10조 규모 추가 투자 예고⸱⸱⸱"현금창출력이 관건"
전문가들 "트럼프 2기 불확실성 대비해야⸱⸱⸱수익성 회복 없는 투자는 리스크"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대한민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해온 정유업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에너지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정유 4사의 수익성은 벼랑으로 내몰렸고 미래 생존을 위해 투입한 대규모 자금은 역대 최고 수준인 50조원의 부채라는 '청구서'로 돌아왔다. 한국신용평가의 최신 분석 자료를 토대로 위기에 직면한 정유 4사의 재무 현황과 향후 과제를 심층 분석했다.
■ 영업익 1.5조 초라한 성적표⸱⸱⸱정유⸱석유화학 '동반 부진'
31일 한신평 분석에 따르면 작년 연결 기준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합산 영업이익은 약 1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약 5.6조원) 대비 73.2%나 하락한 수치다. 업체별로 평균 1조원가량의 영업이익이 증발하며 '어닝 쇼크'의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이러한 부진은 정유와 석유화학이라는 양대 축이 동시에 흔들린 결과다. 경기 침체로 인한 석유 제품의 수요 정체와 더불어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른 구조적 수요 감소가 실적을 직격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부문의 손실 규모가 확대되며 영업이익이 2023년 1조9000억원에서 작년 3000억원대로 급감, 4사 중 가장 큰 하락 폭(83.4%)을 기록했다.
■ '50조 원의 굴레'⸱⸱⸱실적 꺾이고 빚은 15조 늘었다
정유사들은 수익성 악화에도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한 '비정유 부문' 투자는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고스란히 재무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작년 말 기준 4사의 합산 순차입금은 약 50조원으로, 전년 대비 15조원이나 폭증했다.
재무 구조의 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들도 일제히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기업의 실질적인 현금창출력을 의미하는 '순차입금/EBITDA'는 전년 3.3배에서 5.9배로 급등했다. 이는 정유사들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갚아야 할 부채의 속도가 임계치에 다다랐음을 시사한다.
특히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 기업들의 재무 지표가 두드러지게 악화됐다. 배터리 투자를 이어가는 SK이노베이션은 순차입금이 약 31조원까지 치솟았으며 '샤힌 프로젝트'에 사활을 건 에쓰오일(S-OIL) 역시 부채비율이 138.7%에서 181.2%로 크게 뛰었다. 반면, 신규 투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GS칼텍스는 부채비율 76.9%를 유지하며 4사 중 가장 견고한 재무 안정을 보였다.
■ 기업별 각자도생⸱⸱⸱'배터리'와 '석유화학'에 걸린 운명
SK이노베이션: SK온의 실적 반등이 재무 회복의 열쇠다. 순차입금 31조원 중 배터리 부문(SK온)의 비중이 약 65%(20조원)에 달한다. 내년까지 포드, 현대차와의 미국 내 합작 공장 가동에 따른 고정비 부담이 대기하고 있어 당분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GS칼텍스: 4사 중 재무 건전성은 가장 양호하나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MFC(올레핀 설비)의 성과 창출 지연이 뼈아프다.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이 전년 3385억원에서 작년 821억원으로 급감한 상태에서 투자금 회수 시점이 관건이다.
에쓰오일: 9조원 규모의 대규모 석유화학 투자인 '샤힌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최대주주 아람코의 재무적 뒷받침은 든든하지만, 정유 부문의 부진 속에서 외부 차입 확대에 따른 이자 비용 상승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HD현대오일뱅크: 부채비율이 236%로 4사 중 가장 높다. HPC 설비 가동에도 불구하고 업황 부진으로 수익성이 저하되면서 8조원 이상의 높은 순차입금 수준이 지속되고 있다.
■ 전문가 "트럼프 2기, 관세와 유가 사이의 외줄타기"
전문가들은 정유업계의 실적 개선이 단기간 내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금융권의 한 에너지 담당 애널리스트는 "경기 침체와 신재생 에너지 전환 가속화로 인해 정유 제품의 공급 과잉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며 "올해도 중국의 경기 회복 지연과 미국·유럽의 수요 정체로 인해 유의미한 실적 반등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은 업계에 양날의 검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관세 부과는 글로벌 교역량을 감소시켜 정유 수요에 악영향을 주겠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의 에너지 생산 장려로 국제유가가 하향 안정화될 경우 원가 절감과 운전자금 압박 완화라는 긍정적 효과를 동시에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신평 관계자는 보고서를 통해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이 올해도 각각 6조 원과 4조 원 규모의 투자를 예고한 상황에서, 투자 설비의 이익 창출 속도가 신용도 유지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며 "단순한 외형 성장이 아닌 철저한 재무 안정성 관리와 수익성 위주의 포트폴리오 재편이 시급하다"고 했다.
결국 정유 4사는 '전통적 캐시카우의 수익성 하락'과 '신사업 투자의 재무 부담'이라는 딜레마에 놓였다. 50조원의 부채를 딛고 에너지 전환의 연착륙에 성공할 수 있을지, 대한민국 정유산업의 본질적인 기초 체력이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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