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경북 등 집행률 저조⸱⸱⸱'세수 펑크' 아우성 속 한쪽선 예산 사장(死藏)
결산 환류 체계 붕괴⸱⸱⸱"불용액 많은 사업, 차년도 예산 과감히 삭감해야"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2025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전국 지자체들은 일제히 "지방 재정의 위기"를 외치며 국고 보조금 확대를 호소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국세 수입 감소에 따른 교부세 감액으로 곳간이 비었다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지자체들이 작성한 결산서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상황이 나타난다. 매년 수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편성해놓고도 제때 쓰지 못해 사장시키는 이른바 '불용액(不用額)'이다. 예결신문은 연말 특집 기획 1부로 전국 243개 지자체의 재정 운용 실태를 분석, 민생 예산을 가로막는 재정 블랙홀 불용액의 실체를 집중 조명한다.
■ '돈 없다'면서 '남긴 돈' 14조… 재정 효율성 '낙제점'
24일 지방재정 통합공시 시스템 '지방재정 365'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의 전체 불용액 규모는 약 13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5.4% 증가한 수치다. 불용액이란 지자체가 한 해 예산으로 잡아 놓았으나, 사업 계획 부실이나 집행 부진 등으로 인해 실제 지출되지 않고 남은 돈을 의미한다.
지자체별로 살펴보면 서울시와 경기도 등 예산 규모가 큰 지역일수록 절대적인 불용액 액수가 컸으나, 예산 대비 비율로 따졌을 때 강원도와 경상북도 등 일부 광역지자체의 집행 부진이 두드러졌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순세계잉여금이 전년 대비 반토막 난 상황에서도, 특정 대규모 SOC 사업과 보조금 사업에서 발생한 불용액이 수천억 원에 달해 재정 운용의 경직성을 드러냈다.
문제는 지자체들이 세수 부족을 이유로 취약계층 지원 예산이나 긴급한 지역 인프라 수선비를 삭감하면서도, 한쪽에서는 수백억 원의 예산을 '주차(Parking)'하듯 들고만 있다가 연말에 그대로 남긴다는 점이다. 이는 예산의 적기 투입을 통한 지역 경기 부양이라는 재정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행정의 태만이나 예측 실패가 부른 '인재(人災)'다.
■ 복지·민생 사업 '가위질'…계획 부실이 부른 예산 사장
불용액의 폐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예결신문이 취재한 한 광역 지자체의 사례를 보면, 지난해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 예산 수억 원을 '재정난'을 이유로 불용 처리하거나 집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의 전체 결산서를 확인해 보니 집행 부진으로 남은 불용액 총합은 수백억 원에 달했다. 만약 사업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불용액을 10%만 줄였어도, 그 예산은 소상공인 지원이나 아동 돌봄 등 민생 현장으로 흘러갈 수 있었던 소중한 재원이었다.
또한, 불용액은 다음 해 '순세계잉여금'으로 이월돼 추경 예산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엄연히 해당 연도의 정책 효과를 포기한 결과물이다. 예산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의사결정의 산물인데, 특정 사업에 예산을 묶어두는 것은 다른 시급한 사업에 투입될 기회를 박탈하는 '기회비용'의 손실을 초래한다.
특히 고금리와 고물가로 신음하는 서민 경제를 고려할 때, 지자체의 낮은 예산 집행률은 지역 경제 순환의 맥을 끊는 행위와 다름없다.
■ 결산과 예산의 단절⸱⸱⸱'환류 시스템' 작동 불능 상태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기본 원칙은 '결산의 예산 환류'다. 전년도 결산에서 불용액이 과다하게 발생한 사업은 다음 해 예산 편성 시 그 원인을 분석해 과감히 삭감하거나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지자체 예산 편성 과정을 보면 이러한 환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많은 지자체가 일단 확보한 예산 규모를 기득권처럼 여겨 집행 실적이 저조함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으로 다음 해에도 비슷한 수준의 예산을 요구한다. 의회 역시 결산 심사보다는 예산 심사에만 열을 올리는 경향이 있어 결산서에 기록된 막대한 불용액의 수치를 날카롭게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자체 불용액 문제에 대해 "많은 단체장이 예산을 많이 확보하는 것을 업적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결산서에 나타나는 집행률에는 무관심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불용액은 단순히 남는 돈이 아니라, 행정의 예측 실패와 집행 의지 부족이 낳은 예산의 사장(死藏)"이라며 "세수가 부족할수록 불용액을 줄여 가용 재원을 극대화하는 재정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내년도 예산 심사에서는 불용액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업에 대해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하는 의회의 강력한 감시 기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재정 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
결국 2025년 지방 재정의 블랙홀을 메우기 위해서는 '결산 중심의 행정'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예산을 얼마나 많이 가져오느냐보다 가져온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지역 사회에 풀어내느냐가 지자체장의 핵심 역량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부는 지자체별 집행률을 보통교부세 산정 지표에 더욱 강력하게 반영하고, 지자체는 불용액 정보를 주민들에게 상세히 공개해 행정의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
예결신문은 이어지는 2부에서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예비비' 지출 실태를 분석해 재정 위기 속에서도 정작 비상금이 어떻게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는지 추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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