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신탁사 주도의 설계 변경 논란으로 격랑에 빠졌다. 시행사인 KB부동산신탁과 소유주 간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모회사 KB금융지주와 양종희 회장을 향한 책임론까지 부상하고 있다.
■ 신탁방식 재건축, ‘조용한 독주’에 주민들 폭발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여의도 대표적 노후단지인 공작아파트(1976년 준공, 373가구)가 최고 49층, 617가구 규모의 고급 주거단지로 탈바꿈하는 재건축 사업에서 시행사 KB부동산신탁의 일방적 설계 변경 논란이 일면서 주민 반발이 들끓고 있다.
초기 계획 대비 대형 평형(전용 85㎡ 초과)은 191가구에서 124가구로 줄었고, 중소형은 63가구에서 141가구로 급증했다. 커뮤니티 면적과 주차대수도 축소됐으며 고층 배정 보장 조항도 삭제됐다.
신탁사 측은 서울시의 '소셜믹스' 기준을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이는 명분일 뿐, 수익 극대화를 위한 일방적인 변경”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사업에서 주민 의견은 철저히 배제됐다고 주장한다.
소셜믹스란 아파트 단지 내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구분 없이 섞어 배정하는 것으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같은 공동체에서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계층 간 격차와 주거 분리 현상을 완화하고 사회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된다. 최근 서울시는 정비사업지에 이른바 '한강뷰' 임대 아파트를 배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양종희 회장 물러나라”⸱⸱⸱KB금융지주사까지 번진 분노
재건축 소유주들이 결성한 ‘공작아파트 재건축 정상화 추진모임(공정추)’은 전날부터 여의도 KB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시위를 진행 중이다. 구호는 단순했다. “양종희 회장은 책임지고 물러나라.”
이들은 신탁사 수수료 구조(분양 수익의 2~4%)가 설계 변경의 배경이라고 본다. 즉, '중소형 확대를 통한 일반분양 극대화 → 수수료 극대화 전략'이라는 것이다.
공정추는 설계 변경이 정비사업운영위원회와의 독단적 합의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최근 주민들은 358명 중 89명이 서명한 전체회의 개최 요구서를 제출한 데 이어 운영위원장 해임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 ‘유령 회의체’ 된 운영위원회⸱⸱⸱주민은 절차상 사각지대
문제는 법적 구조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조합과 달리 운영위원회가 법적 구속력이 없고 운영위원장 해임조차 신탁사의 판단에 좌우되는 구조다. 이로 인해 “투명하다는 신탁 방식이 오히려 주민 의견 배제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 연쇄적인 시행 논란⸱⸱⸱여의도 전역으로 확산되는 불신
공작아파트 사례는 KB신탁의 반복된 시행 리스크를 드러낸다. 이미 인근 한양아파트에선 상가 부지를 무리하게 설계에 포함시켜 행정 제재를 받은 전례가 있으며 대교아파트는 수탁자의 이자율 자율 조항 논란 끝에 조합 방식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이처럼 여의도 일대 복수 단지에서 소통 부족, 절차 불신, 주민 의견 무시가 반복되면서 신탁방식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더구나 KB부동산신탁은 최근 임직원이 부동산 신탁 계약 과정에서 수억원대 금품을 수수한 것과 관련해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으며 신뢰도까지 추락한 터다.
전문가들은 “조합 방식의 비리와 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된 신탁 방식이지만 준공·입주·청산까지 완료된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초기 자금 조달의 용이함과 사업 속도만 앞세운 결과 정작 주민 동의와 민주적 절차가 희생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 KB신탁 “절차적 정당성 확보 노력 중”⸱⸱⸱설득력은 의문
KB신탁은 “운영위와 협의하고, 주민 간담회도 개최했으며, 설명 자료는 유튜브에도 업로드했다”고 반박하지만, 공정추 측은 “선호도 조사도 실명 인증 없이 가능해 신뢰성이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이다.
KB신탁 관계자는 “투명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법적·절차적 근거에 따라 지속적인 주민 소통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작아파트 사태는 신탁방식 재건축이 가진 구조적 허점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절차적 공정성과 주민 권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신탁 방식은 또 다른 갈등의 온상이 될 뿐"이라며 "정부와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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