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미국 에너지 자립 정책에 따른 유가 하향 안정화, 단기적으론 '재고 손실' 부를 것"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상호관세를 2일 시행하면서 국내 정유업계는 유례없는 '전시' 상황을 마주했다. 지난 1편에서 본지가 보도했 듯, 작년 정유 4사는 합산 순차입금은 50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이다. 한국신용평가가 경고한 '현금창출력 대비 과도한 부채' 리스크는 이제 트럼프 관세 장벽을 만나 실질적인 신용등급 강등 위기로 현실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조치가 단순한 세금 인상을 넘어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을 수출하는 국내 정유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작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3%나 급감하며 체력이 바닥난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이제 25%의 관세 장벽을 뚫고 정제마진을 확보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에 직면했다.
정유사들은 이제 정제마진이라는 전통적인 수익 지표를 넘어 관세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상수로 둔 고난도의 '시나리오 경영'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 상호관세 25%의 벽⸱⸱⸱수출 중심 구조의 '아킬레스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예고한 보편적 기본관세와 상호관세 정책은 한국과 같이 대미 무역 흑자가 큰 국가를 정조준하고 있다. 특히 정유사들은 휘발유와 항공유 등 고부가가치 석유 제품의 상당량을 북미 시장에 의존해 왔다.
한신평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계의 수출 비중은 업계 평균 50%를 상회하며 일부 기업은 60%에 육박한다. 이런 구조에서 25%에 달하는 관세가 부과될 경우, 정유사가 확보할 수 있는 정제마진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까워지거나 오히려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한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관세 장벽은 국내 정유사들의 가격 경쟁력을 상실시킬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셰일 오일 시추 확대로 자급률이 높아진 현지 정유사들과의 싸움에서 우리 기업들을 퇴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는 2024년의 어닝 쇼크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장기적 불황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 미국산 원유 도입 20% 돌파⸱⸱⸱'에너지 외교'와 '재고 손실'의 딜레마
정유 4사는 트럼프의 무역 흑자 축소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수입 원유의 물길을 중동에서 미국으로 급격히 돌리고 있다. 2024년 말 15% 수준이었던 미국산 원유(WTI 등) 도입 비중은 올해 현재 20%를 상향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이는 '에너지 외교' 측면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미국 내 증산에 따른 원가 절감 효과를 노린 전략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재무적 함정이 숨어 있다. 하이투자증권 전유진 연구원은 "트럼프의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정책으로 국제 유가가 하향 안정화되면 정유사 입장에서는 원가 부담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지만, 고유가 시기에 비싸게 사들인 원유의 가치가 하락하며 발생하는 '재고자산 평가 손실'이 수천억 원 규모로 실적을 짓누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앞서 언급한 50조원의 빚을 갚기 위해 이익을 내야 하는 정유사들에게 유가 하락은 오히려 단기적인 '회계적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중국발 밀어내기 수출과 아시아 시장의 지각변동
미국의 관세 강화는 중국 정유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국내 정유사들의 주력 시장인 동남아시아로 전이되고 있다. 내수 소비가 둔화된 중국 정유사들이 재고 처리를 위해 아시아 시장에 석유 제품을 덤핑 수준으로 밀어내기 시작하면서 국내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은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4~5달러 선을 밑돌고 있다.
법무법인 지평의 '트럼프 대응 TF' 관계자는 "정유사들의 재무적 임계점은 결국 글로벌 수급 불균형을 얼마나 빠르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관세 장벽과 중국발 공급 과잉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정유사들은 이제 단순 정제마진에 의존하는 경영을 끝내고 비정유 부문의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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