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잡으려 금리 못 내리는 중앙은행…긴축 기조 장기화로 시장 '돈 가뭄' 우려
'휴전'은 임시방편일 뿐…종전 협상 결과에 춤추는 유가·환율·금리 시나리오
[예결신문=신하연 기자] 미국이 제시한 협상 시한인 8일(현지시각)을 앞두고 중동 지역이 극적인 2주간의 휴전에 합의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최악의 충돌 위기는 일단 모면했다. 이번 합의로 그간 전면 폐쇄됐던 호르무즈 해협이 조건부로 개방됐으며 에너지 공급망에 일시적인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이란과 미국 간 정전 합의 조건에 대한 이견이 여전히 커 종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런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시장의 경계심을 지속시키고 있으며 국제 유가(WTI 기준)는 고점 대비 하락했음에도 배럴당 90달러대에서 좀처럼 내리지 않고 있다. 이는 국내 실물 경제의 방향 전환 시점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너지 공급망 불안에 실물 경제 비대칭적 시차 영향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선을 유지하는 것은 글로벌 경제에 '뒤늦은 청구서'로 작용한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물가를 선행적으로 끌어올리는 반면, 성장을 후행적으로 억누르는 비대칭적 시차 효과를 발생시킨다.
공급망 차질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은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약화시키고 기업의 생산 비용을 증대시켜 결국 전방위적인 소비 및 투자 위축으로 연결된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무역 수지 악화와 내수 경기 침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원유 도입 단가 상승은 경상 수지에 즉각적인 타격을 주며, 이는 다시 자국 통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수입 물가를 추가로 자극하는 악순환을 형성한다.
신한리서치센터 하건형 이코노미스트는 "중동 사태 장기화로 인해 실물 경제 전망 경로의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하며 "유가가 90달러대에서 고착화될 경우, 글로벌 교역량 감소와 물류비용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제품 가격에 전이되면서 하반기 경제 성장률에 가파른 하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기대 인플레이션 탈앵커 위험…중앙은행의 정책 딜레마
고유가의 고착화는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운용에 있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인 '기대 인플레이션의 탈앵커(De-anchoring)' 위험을 높인다.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심리가 시장과 가계에 뿌리내리면, 이는 임금 인상 요구와 제품 가격의 전방위적 인상으로 이어져 물가 안정을 저해하는 구조적 요인이 된다. 특히 임금 협상 연동 구조를 가진 유로존이나 임금 레벨 자체가 높은 미국 시장에서는 이러한 고착화 위험이 더욱 크게 부각된다.
이진경 연구원은 "각국 중앙은행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탈앵커되기 전에 정책 신뢰도를 확인해야 하는 압박 속에 놓여 있다"며 "이러한 긴축적 대응 기조는 2분기 금융 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단기물 금리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면서 추가 하락이 제한되는 반면, 장기물 금리는 인플레이션 프리미엄과 성장 둔화 우려가 충돌하며 변동폭을 키우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는 유가 상승이 고착화될 경우 기간 프리미엄 확대로 인해 장기 금리가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종전 협상 여부에 따른 시나리오별 금융 시장 대응
재계에서는 향후 2주간의 휴전 기간 내 진행될 종전 협상 여부가 글로벌 거시 경제 시나리오의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은 협상 결렬에 따른 분쟁 재개와 극적인 종전 합의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두고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만약 종전 협상이 불발돼 에너지 시설에 대한 직접 타격이 현실화된다면 WTI는 100달러 상회가 고정되며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재점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종전이 확정될 경우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빠르게 축소되며 유가는 가파르게 하락하게 된다. 금융 시장 관점에서는 달러 강세 기조의 지속 여부가 관건이다. 지정학적 위험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안전 자산 선호로 인해 달러 강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원화와 엔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한 추가 절하 압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정책 대응 여력이 제한적인 국가의 자산에 대해서는 당분간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결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기업들은 이미 유가 90달러 시대를 '뉴 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이고 에너지 절감 공정 도입과 공급망 다변화에 착수한 상태다. 이번 휴전은 잠시 숨을 고를 기회를 줬을 뿐, 고유가가 남긴 부작용은 여전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향후 2주간의 협상 과정은 단순한 외교적 이벤트가 아닌 글로벌 경제의 생존을 결정지을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것이다.
예결신문 / 신하연 기자 beliga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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